“은혜 갚은 대한민국”..6·25 전쟁 때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한국 도와줬던 에티오피아의 도움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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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70년 전인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당시 세계 최약국이었던 한국은 다급하게 전 세계에 파병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때, 머나먼 땅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보낸 국가가 있었다. 에티오피아였습니다.

한국에 참전한 많은 국가 중에 이해관계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침략으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신념으로 손을 내민 나라는 에티오피아뿐이었습니다.

당시 에티오피아를 다스렸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직접 황실 직속 병력 군대를 파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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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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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라! 살아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고, 전부 거기에 가서 모두 맹렬하게 싸워서 전사하거라!

만약 사지가 멀쩡하게 돌아온다면, 짐의 이름을 걸고 절대로 용서치 않겠다!

너희들의 죽음의 대가로 저들에게 ‘자유’라는 것을 저들의 손에 꼭 안겨주거라!

우리 민족이 과거에 이탈리아인들에게 무엇을 당해왔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그 고통은 뼛속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짐도, 너희 모두도 잘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 모른 척 한다면, 침략자들보다 못한 더러운 위선자일 뿐이다”

6·25 전쟁보다 20년가량 앞선 지난 1936년,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셀라시에 황제와 에티오피아군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무시당한 바 있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도움받지 못하는 약소국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낀 셀라시에 황제는 자기만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때의 그 다짐을 지켰습니다.

셀라시에 황제는 “같이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의 처지에 어찌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에티오피아의 황실 직속 근위대인 강뉴 부대를 한반도에 파견했습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아무 관계도 없었던 우리나라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것도 정예병력만을 보냈습니다.

총 6,037명의 에티오피아 젊은이들이 위기에 처한 한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습니다.

숫자는 적었지만, 적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전설의 부대’가 됐습니다.

3년의 긴 전쟁 동안 253번의 크고 작은 전투가 치러졌고, 에티오피아군은 눈보라 등 낯선 환경 속에서도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모두 승리를 거뒀습니다.

전쟁에서 123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당했으나 에티오피아군은 포화가 터지는 전장 한복판에서도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 전부를 수습했다. 포로 또한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용감하게 싸운 에티오피아 용사들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곧바로 떠나지 않고 고아원을 설립하는 일을 돕는 등 한국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6·25 전쟁이 끝난 뒤, 이들에게는 불행이 닥쳤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황제는 폐위됐고,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셀라시에 황제는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가 됐습니다.

6·25 전쟁에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용사들과 가족들, 그 자식들은 말도 못 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한국의 편에서 공산주의와 싸웠다는 이유로 ‘민족반역자’로 낙인찍혀 재산을 몰수당하고, 직업을 잃었으며, 억압받고 탄압받으며 최극빈층으로 살아갔습니다.

실제 장애인이 된 채로 판자촌에서 신문지를 깔고 자는 참전 용사들의 모습이 과거 우리나라에 보도된 적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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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그런 환경에서도 한국을 도운 일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내 비록 온몸에 총탄이 박히고 팔다리를 잃었지만 한반도의 자유를 위해 싸운 자부심으로 한평생 살아왔습니다”

“가난이 대물림돼 자식 교육도 못 시키고 있지만 한국이 발전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흐뭇합니다”

“6·25 전쟁 때 마신 유독가스 때문에 폐까지 손상돼 아직까지도 힘듭니다. 그런데 한국에 전쟁이 다시 나면 지금도 가서 도와주고 싶습니다”

“한국이 잘 살게 됐다니… 내가 더 고맙다”

“우리는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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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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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에티오피아가 오늘날 우리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에티오피아의 아비 아흐메드 알리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를 요청하고 현 시국의 대응 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아비 총리는 이후 자신의 공식 SNS를 통해 “한국은 현 시국의 성공적인 대응 사례”라며 관련 사태 극복을 위해 한국에 지원을 부탁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에티오피아의 확진자는 3일 기준 29명이다. 아직까지는 확산세가 완만하지만, 열악한 의료 및 생활 여건을 고려하면 언제든지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올해는 6·25 전쟁 70주년입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이들 중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먼저 신세를 갚고, 그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는 게 도리가 아닐까.

한편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네이버 해피빈 사이트에서도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들이 모여 사는 마을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모금 활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공공 화장실과 급수시설 등 기본적인 생활 시설을 개선하는 사업입니다.

생존해있는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들도 많지 않다. 이들의 남은 생애, 조금 더 편안히 보낼 수 있길 바란다면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 갚은 까치’의 나라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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